1920 *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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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명 : 직관과 왜곡으로 도달한 회화의 자율성
  • 작가명 : 김광우
차이의 예술: (6)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 회화
작품의 성격과 중요성이나, 저술을 통한 이론과 바우하우스에서의 교육이 미친 영향을 볼때,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와 파울 클레(1879~1940)는 20세기 전반의 추상미술발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이들은 자연의 풍경이나 대상의 표현적 특징을 재현하지 않고 망막에 투영되는 실제 이미지에 상관하지 않은 채 회화 도구 본래의 표현적 속성을 살리는 데 역점을 둔 선구자들이다.

표현적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 선·면·색 등과 같은 회화요소를 과학적·심리적으로 세밀히 분석했다. 재현적 표현을 버리고 기하적 원근법을 없애며 색채와 형태의 한층 심오한 감각적 특성을 명확히 다룸으로써 회화공간을 창조했다. 자연에서 받은 감동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논리적 사고가 아닌 갑자기 떠오르는 일종의 직관을 통해 회화와 자연은 각각 원리와 목적이 다른 두 개의 분리된 세계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를 근거로 회화의 자율성에 관한 믿음, 즉 회화는 외부세계와의 어떤 유사성이 아니라 본래의 미학적 원리에 의해 지속되거나 존재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칸딘스키는 1909년부터 ‘즉흥’ 연작을 그렸는데, 인물·건물·산 등의 형태가 불분명하다. 그것들은 기호의 기능을 한다. ‘즉흥’이란 제목은 가능한 한 의식적인 제어를 극소화한 상태에서 형태를 창조했음을 시사한다. ‘구성’연작은 ‘즉흥’에 기반을 두고 계획적으로 확장시킨 것들이다. 이런 작품들은 기하적 추상과는 구분되며 추상에 이르는 또 다른 과정이다. 특기할 점은 기하적 추상과 칸딘스키의 비정형 추상을 적대적인 양식으로 봐선 안된다는 것이다.




▲인상3-컨서트 ©
‘인상’ 연작을 예로 들면, 칸딘스키가 1911년 1월 2일 쇤베르크의 음악회에 다녀온 후 그린 ‘인상 III-콘서트’가 있는데, ‘인상’은 외부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제목이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적 인상을 동시에 표현한 것으로 형태와 색채를 콘서트홀의 분위기와 음악에 대한 상징으로 나타내면서 노란색과 검은색이 두드러지도록 흰색으로 보완했다. 검은색 면은 무대 위의 피아노이며 왼편의 여러 검은 곡선은 무대 가까이서 음악을 듣는 청중을 상징한 것이다. 피아노 양편의 흰 기둥은 소리기둥의 은유적 표현이다. 가장 인상적인 노란색은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쇤베르크의 소리다. 노란색은 소리를 상징하는 색으로 그는 1909년에 무대구성에 관한 글에서 ‘노란 소리’란 제목을 사용했다. ‘인상 III-콘서트’는 상호 영향을 주는 회화와 음악의 공감각을 표현한 것으로, 이런 공감각은 20세기 초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클레의 작품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칸딘스키는 악기의 소리를 색채와 연관시키면서 음악과 회화에는 자체의 특정한 자원이 있다고 봤다.


1차대전 전에 칸딘스키는 신지학과 강신술에 심취해있었으며, 인지학 사상가 스타이너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서클에도 관련됐었다. 이런 배경에서 그는 내면의 경험 혹은 정신적 현상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일에 몰두했으며 ‘즉흥 21a’는 그런 속에서 창안됐다. 1911년에 제작한 작은 유리그림 ‘태양과 함께’는 1913년에 ‘단순한 기쁨’이란 제목의 유화로 다시 제작됐다. 세 작품이 약간 다른 양식을 취하나 유리그림의 조형 언어가 사용됐으므로 추상에 대한 그의 의도와 과정을 알 수 있다. ‘태양과 함께’에 나타난 가파른 이중 언덕은 그가 종종 사용하는 고향에 대한 향수로 러시아 건축물을 올려놓기 위한 회화적 언덕이다. 왼편에 세 기사가 말을 몰고 언덕을 올라가고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있으며 세 사람이 탄 배가 물결을 가르고 호수를 지나고 있다. 하단 오른편에 반은 동물로 보이는 두 형상이 화면 안으로 들어선다. 이 작품은 새로운 정신적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칸딘스키의 묵시론적 관념의 세계다. 이 작품을 염두에 두고 ‘즉흥 21a’를 보면 이해가 수월해진다. ‘즉흥 21a’에서는 색을 문질러 흐릿하게 한 부분들이 많으며 ‘태양과 함께’에서의 밝은 색상들은 회색으로 덮어졌다.


칸딘스키와는 달리 클레는 재현적 이미지를 남긴 작품에서 왜곡법을 사용했는데, ‘왜곡’은 추상에 이르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진실을 제시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왜곡되게 표현했다”라고 적었듯이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형태와 색채를 비자연주의 방법으로 사용했다. 그의 작품은 유머와 시적 위트가 있으며, 절도 있는 아이러니가 표현됐지만, 회화의 궁극적인 중요성을 갈망한 이상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 클레는 표현수단으로 숫자, 알파벳, 느낌표, 음악부호, 정지부호, 화살표, 별, 깃발, 눈, 심장 같은 형상적 상징적 추상적 기호를 사용했는데, 이로써 자연과 결부된 한계에서 벗어나 무한한 표현의 세계로 나아갔다. 기호와 상징은 하나의 의미로 확정지어지진 않지만, 작품 제목으로 이해할 수 있다. 클레는 ‘창조에의 고백’에서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적었다.
‘급강하하는 새와 화살표’에서 급강하하는 새는 비행기처럼 보이며 그는 한 해 전에 ‘새-비행기’를 이런 형태로 묘사한 바 있다. 비행기를 바라보며 ‘새’라고 생각한 것이다. 직사각형들을 연결시키면서 연결되는 부분에 점을 찍고 새의 다리를 그려 넣고 새의 머리를 달아 새도 되고 비행기도 되게 했다. 드로잉에서는 하단에 작은 화살표를 두 개 그려 넣었지만 수채화에서는 큰 화살표 세 개를 그려 넣어 하강의 방향을 가리키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하강하는 새’는 드로잉 ‘하강하고 활주하는 새’를 그린 후 구성을 정리해 완성한 것이다.

그는 전쟁 중 독일군 비행학교에 복무하면서 1918년 3월 8일 폭격수 게오르그 슈미트의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후 일기에 “이번 주 나는 세 차례에 걸친 치명적인 사건을 목격했는데 한 사람은 프로펠러에 부딪혔고 두 사람은 공중에서 충돌했다. 어제는 네 번째의 사람이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지붕 위로 거꾸로 곤두박질쳤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라고 적었다. 1년후 클레는 그날의 사건을 머리에 떠올리며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하강하는 새의 모양을 모사하면서 비행기에 13이란 숫자를 적어 넣고 오른편에 하강하는 방향을 화살표로 크게 그려 넣어 하강의 속도가 매우 빨랐음을 시사한다. 숫자 13은 비행기에 적힌 넘버일 수도 있고 불운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화살표는 이후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클레는 칸딘스키뿐만 아니라 세잔이나 들로네 등의 영향도 많이 받았지만, ‘추상의 아버지’라 불리는 칸딘스키와 함께 2차대전 전까지 아카데믹한 추상의 세계를 구축했다. 칸딘스키는 종교적인 감성에 치우친 면이 많았던 반면, 클레는 서정적·문학적인 면에서 또 다른 감성을 보여줬던 게 다른 점이다. 하지만 둘은 회화에 있어서 음악적인 요소,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이면에 있는 것을 들춰내려 했다는 것, 그리고 색·면·선의 요소를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고전적 추상화가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김광우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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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