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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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명 : 미술비평 : 권순철의 '얼굴'전
  • 작가명 : 김광우



▲권순철, '얼굴',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04. ©

 

가나아트와 갤러리현대에서 파리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권순철과 김창렬의 개인전이 각각 열리고 있다. 권순철은 ‘얼굴 화가’로 알려졌고, 김창렬은 ‘물방울 화가’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고국 방문전시회는 바람직하고 두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은 격려하며 힘을 실어주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근거 없이 칭찬만 하는 것은 작가에게도 관람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칭찬은 전시회 주최측과 평론가들에 의해 쏟아지는데, 무분별한 칭찬은 작가가 감당하기 어렵고 관람자를 기만하는 일이다.
권순철, 色의 어휘가 풍부한 화가

권순철은 무채색에 가까운 채색에 매우 익숙하며 국내 화가들이 사용하지 않는 색을 자유롭게 사용하는데, 프랑스에서 오래 살다보니 색의 폭이 커진 것으로 이해된다. 국내 화가들은 동일한 환경 안에서 작업하다보니 거의 제한된 혹은 유사한 색들을 공유하는 것이 보통이어서 외국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될 경우 국내 화가의 작품은 멀리서도 거의 가려낼 수 있을 정도다. 색은 화가의 언어다. 많은 색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화가에게는 풍부한 어휘가 있으므로 다양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다. 채색에서 권순철의 작품이 지닌 장점은 표현의 다양성이다.

그의 작품은 매우 강렬하며 다가가서 볼수록 이미지는 사라지고 색질에 의한 질료적 추상이 나타난다. 이는 회화적으로 흥미로운 사건이다. 그의 구상과 추상의 병용은 마티에르와 이미지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으로 성과를 거뒀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를 그의 추상 이미지에서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채색에 가까운 잡색의 두터운 질료적 형상을 보면서 기억 속에 내재하는 형상을 끌어내 우리가 바라보기를 원하는 이미지로 보게 된다. 이는 회화적 퍼즐이며 작가와 관람자가 더불어 즐길 수 있어 유쾌하다. 릴리프와 같은 그의 얼굴은 조각가 알베르토 쟈코메티를 상기시키는데, 쟈코메티는 특정한 인물의 이미지를 제작한 데 반해 권순철은 일반적 인물의 이미지, 예를 들면 특정한 인물의 수심에 찬 얼굴이 아니라 누구의 얼굴일 수도 있는 수심에 찬 일반적인 얼굴을 제작하는 것이 다르다.

문제는 작가의 말과 평론가의 말이 작품과 거리가 먼 데 있다. “이 땅의 삶이 고통스럽고 처절한 것이며 절망의 육신들이 삶과 죽음에 관계없이 우리 주위를 떠도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작가는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한국의 노인네들 얼굴과 표정 속에서 우리 역사의 상흔을 본다. 늙고 주름진 얼굴, 순박한 혹은 근엄한 얼굴, 기나긴 인고의 노동이 새겨진 얼굴, 수심에 지친 표정 등, 그는 이런 얼굴을 수없이, 생생하게 그리고 또 그린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나는 서양화의 대가들이 그린 얼굴의 형상들을 봤다. 그곳에는 모네가 그린 아내 카미유의 임종의 얼굴이 있었고, 반 고흐가 그린 젊은 노동자의 옆모습과 주름이 패인 늙은 여인의 얼굴이 있었고, 화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높은 서양모자를 쓴 여인, 베이컨을 상기시키는 이미지도 있었다. 그는 차용한 대가의 이미지들에 특유의 채색을 가했으며 이런 패러디는 새로운 창작을 위해 용인된다.

과장된 평론에 갇힌 작품

그의 작품들에는 한국인의 얼굴도 있지만 거기에서 우리 역사의 상흔은 발견할 수 없다. 민족에게 고통을 준 역사적 상처의 흔적은 질료적 추상으로는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추상이라도 구체적인 이미지를 사용해야만 상흔을 표현할 수 있다. 스페인 동란의 상흔을 나타낸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예로 들면 폭탄과 울부짖은 어미를 나타낸 추상화시킨 이미지가 상흔을 나타내는 것이지 구체적 형상을 비껴간 권순철의 질료적 추상으로는 상흔을 표현할 수 없다. 회화적 퍼즐만이 있을 뿐이다.

회화적 불구에 이른 김창렬의 물방울

김창렬에 관해서는 길게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일찍이 1970년대 초에 물방울을 대상과 관념 사이의 매개체로 부각될 수 있도록 그린 것에는 경의를 표한다. 그렇지만 동일한 주제를 평생 그린 화가가 과거에 없었고 더 이상 창작을 할 수 없을 때, 즉 다른 주제를 그릴 수 없을 때 화가들은 붓을 던지고 화가의 생을 마감했다. 김창렬은 물방울을 삼십 년 이상 그리면서 동일한 주제의 그림을 양산하고 있다. 카탈로그에 실린 평론은 그의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동양적 미학의 정수를 서구 회화에 주입하고 있다”, “불교의 華嚴一乘法界圖에서 발견할 수 있음직한 한 방울의 물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태양들이 빛을 발하는 무한한 공간이 담겨 있음” 등을 읽으면서 꿈보다 해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의 평론 때문에 작품 따로 평론 따로 작가도 관람자도 모두 피해를 입는다.
물, 흙(혹은 모래나 먼지), 불, 바람, 즉 水地火風은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기원전 6세기부터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기본 요소로 사고됐다. 서양에서는 탈레스와 밀레토스 학파가 만물의 근원을 각각 水地火風의 하나로 보았고 기원전 5세기 중반 프로타고라스에 와서 네 요소 모두로 보는 합리적인 견해가 생겼다. 동서의 사상적 교류가 없었을 때인데 불교에서 또한 그렇게 봤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네 가지 중 하나를 테마로 삼으면 철학적 평론을 받기 십상이다. 비디오 작가 비욜라를 포함해 몇몇 작가들이 이런 요소를 테마로 삼아 성공을 거뒀는데, 그들은 자신이 사용한 요소에 대한 철학적 인식의 바탕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칭찬을 받을 만했다. 하지만 김창렬의 물방울은 이런 사고의 결과물로 보이지 않는다. 물방울 외에도 물을 주제로 좀더 다양하고 사고적인 작업을 했더라면 물의 철학을 그에게도 적용할 수 있겠지만 물방울만을 그릴 뿐 그 밖의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회화적 불구 내지는 미학적 파산을 의미할 뿐이다.

김광우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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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