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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명 : 미술비평: 김경인의 '소낭구 이야기'展을 보고
  • 작가명 : 김광우

 

충족되지 못한 욕망, 방황은 계속된다
김경인은 노력하는 화가고 스스로 ‘화단 뒷켠에서 아웃사이더’로 자처한다. 그래서 1994년 이중섭미술상을 받을 때는 영광과 더불어 ‘생소함’을 느꼈다. 1971년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 1974년 제3그룹 전에 출품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30여년에 걸치 회화여정은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시기는 1974~91년으로 17년의 창작을 민중미술에 헌납한 때다. 1974년에 그린 ‘문맹자 34-1’는 앞으로 서정적 표현주의를 추구하게 될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국민 모두에게 문맹자가 될 것을 강요한 군사독재에 대한 항거를 방 안에 갇힌 사람들을 실루엣으로 묘사하고 신문지 얼굴에 눈가리개를 한 형상으로 표현했는데, 강렬한 회화적 이미지다. 이 시기 작품을 서정적 표현주의라 칭하는 이유는 다분히 격앙된 감정을 과장해서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창작의 주요 원동력은 분노였다. 일차적인 동기는 1972년 선포된 유신에 대한 분노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념이었다. “한국 현대미술사는 집단적 이기주의고 다분히 사이비적인 판짜기에 편중”돼 있다는 데 대한 분노가 이차적 동기였다. 그의 첫 시기는 “정직하게 현실과 나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즉 서정적 표현주의는 한국이 처한 정치적, 예술적 억압에 대한 반발로 출발했다.

문제는 창작을 분노에 의존한 것으로 어두운 좌절의 수렁에 스스로를 17년이나 방치한 것이다. 비탄, 절망, 죽음 등의 문제에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건 화가에게 불행이었다. 그가 새로운 회화 세계를 찾는 데 힘겨웠고 적응하는 데 다시 수년을 허비한 것만 봐도 17년은 너무 오랜 세월이었다. 분노의 감정을 오래 품은 건 자신을 수렁에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1978년작 ‘소멸’은 뛰어난 작품이다.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구성, 흰색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영혼은 이 시기 최고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1980년대 작품들을 보면 혼란에 빠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시기 작품들에는 온갖 서양 양식이 다 등장한다. 도록을 통해 꼽을 수 있는 서양 양식의 차용만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서양화를 연구한 화가도 드물다고 생각된다. 아쉬운 점은 양식의 차용이 아니라 자기의 것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서양 미술이론을 이대로 답습하는 건 그들이 씹던 껌이나 받아 씹는 게 아닐까” 하고 고백하는 그는 매우 겸손하고 솔직하며 자성의 미덕을 갖춘 화가다.

둘째 시기는 1991~95년으로 소나무에 집착한 때다. 서양 양식 답습하기를 중단하고 새로운 회화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그는 강원도 정선 몰운대에 솟아 있는 벼락 맞은 소나무를 보고 창작의욕이 생겼다. “뒤틀린 줄기와 파이고 갈라진 껍질, 끈질긴 뿌리에 우리의 미적 원류가 흐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분노의 시기에서 한국 美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시기로의 이행이다. “방방곡곡 소나무를 찾아다니며 국토를 세 바퀴는 돌았지요”라고 하는 그에게 ‘소나무 화가’란 명칭이 붙여졌다. 이 시기의 작품을 보면 그가 자연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소나무를 그린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소나무의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자연의 소나무를 그린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춤을 추는 동적 소나무, 그가 바라보고픈 소나무다. 감정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방법을 17년 동안이나 사용하다보니 습관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도 자유롭지 못하고 소나무도 자유롭지 못하다.

셋째 시기는 1995~2004년으로 소나무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그도 자유를 누리는 때다. 1995년 아크릴로 그린 ‘신목의 세월’을 2004년에 유채로 개수 보완한 걸 보면 자연을 좀더 존중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미 그린 것을 정정하느라 채색에 한계가 있어 어느 정도 자연으로 되돌리고 싶어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의도는 충분히 감지된다.

아쉬운 점은 방황이 아직 종료되지 않은 것으로 이번 전시 작품에서도 주제와 양식의 다양성이 나타나 회화에 대한 그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자신감의 상실로 보인다. 춤추는 사람과 소나무를 병렬시킨 춤사위 시리즈의 경우 조형적으로도 일체감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소나무를 의인화하는 미학적 근거도 단순하기 짝이 없다. 자연의 오브제가 인체처럼 보이는 건 누구나 경험하는 바지만, 오브제의 본질을 표현하지 못하는 회화적 상황에서의 의인화는 아무런 의미나 감흥도 주지 못한다. 작가 자신이 존경을 표하는 인물과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인물 76명의 초상을 조형적 소나무가지에 삽입한 ‘소낭구 사람들’은 단번에 알아볼 수 없는 인물들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 외에는 왜 '소낭구 사람들'로 불리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렇듯 김경인의 작품은 깊은 사유에서 제작되지 않고 그의 감상은 너무 단순하고 산만해서 자신의 회화적 동기를 우선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림을 서둘러 그리기보다는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오브제와 양식 외에도 작가의 사고가 매우 중요한 회화적 요소로 관람자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한편 ‘돌산 앞 소낭구’에선 그도 자유롭고 소나무도 자유로워졌음을 본다. 그리고 ‘소낭구 이야기0301’와 ‘소낭구 이야기0302’는 매우 훌륭하며 앞으로 전개될 김경인의 신화 이야기의 서문이라는 느낌이다. 이 작품들을 시작으로 정진한다면 커다란 회화적 수확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소낭구 이야기’ 시리즈가 사뭇 기대된다.

김광우 / 미술평론가

필자는 1972년부터 뉴욕에 거주하면서 뉴욕대학과 포담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했다. 이후 한국에서 미술관련 저술작업과 평론활동을 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폴록과 친구들’, ‘워홀과 친구들’, ‘뒤샹과 친구들’,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 등이 있다.

●소낭구 작가 김경인(1941~)

김경인은 국내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작가로 알려져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1970년대 민중의 자유를 제압하는 유신사태 앞에서 그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그릴 것을 결심했다. 이 때 그린 그의 ‘문맹자 시리즈’는 유명한데, 당시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권력에 눈이 먼 것을 보고 이들을 ‘문맹자’로 규정하는 사회비판적 메시지들을 담았다. 이 시대의 暗畵들은 1980년대까지 이어지며, 1981년엔 ‘문제의 작가’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정치사회적인 변화의 물결 앞에서 그는 민중미술의 한계를 인식하고 ‘소낭구 작가’로 변화를 꾀한다. 1991년 여름 강원도 정선에 내려간 이후 여태껏 15년 동안 줄기차게 소나무만 그려오고 있는 것. 하지만 그의 소나무 그림은 사실적인 묘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민중의 생활과 정신을 담은 형태거나 이 땅의 서사를 보여주는 등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실험되고 있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 소나무는 너무 많이 그렸다”며 다른 것들을 그릴 거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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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