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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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론 : 분할과 하모니 / 자연에서 찾은 추상적 조형의식
  • 평론작가 : 김광우

 

추상은 20세기 미술의 성과다. 추상이 태동하게 된 주요 동기는 세 가지로, 이후 전개된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로써 분류 가능하다. 첫째, 서양미술사에서 최초로 추상화가 출현한 1910년 칸딘스키가 유추할 만한 오브제의 형상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오브제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선과 색으로 긴급하게 표현한 것이다.
느낌이란 순간적으로 감지되는 것으로 오래 생각하면 표현되지 않기에 신속히 붓을 놀리게 된다. 이런 유의  작품을 감상할 땐 일견의 인상에 의존하게 되는데, 느낌으로 감상하는 게 적당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뉴욕에서 출현한 추상표현주의와 1990년대 성행한 신표현주의 추상 모두 여기에 속하며, 느낌 외에 잠재적 의식도 분출된 게 특기할 만하다. 다만 예술가들의 느낌과 사고가 복잡해지고 개성적이 되면서 일견에 감지하기 쉽지 않지만, 그들의 창작 동기를 알면 곧 이해가 된다.   

두 번째 유형은 색채를 도면화 시킨 것이다. 쿠프카의 ‘색면’(1910)을 예로들면 구상적 주제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 유형과 같지만,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분광된 색채를 배열한 게 다른 점이다. 빛의 역할을 강조한 데서 생겨난 추상이다. 들로네의 ‘동시에 열린 창문들’(1912)은 덧창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효과를 오직 색채의 대비로만 표현한 것으로 색채가 곧 주제다.

▲'작품404-D', 혼합재료, 74×90㎝, 1940.

© 세 번째 유형은 오브제의 형태를 단순화, 요약, 응축하며, 개별적 요소를 무시하고 보편성을 따르는 조형적 추상이다. 오브제의 무수한 선을 수직과 수평으로 요약하고, 구체적 형태를 무시하며, 지엽적 색을 배제하고, 직선과 일차색을 사용한다.
몬드리안과 말레비치의 절대주의가 이런 유형의 규범이 됐다. 이는 자연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말레비치에 따르면 “이성, 감각, 논리, 철학, 심리학 등 인과법칙, 기술적 변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었다. 조형주의와 구성주의의 근간이 됐으며, 아르프와 미로 등 유기체 형상을 이용한 추상도 이 범주에 속한다.

오브제 형태 단순화한 조형적 추상 계열에 속해

유영국의 조형적 추상은 세 번째 범주에 속한다. 1996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데생도 기본형태를 알아보는 방법으로 중요하지만 미술의 기본은 모든 형태가 구조체라는 점에서 다양하고 수많은 면을 그 구성과정에서 탐구하는 것이다. 특히 대상의 배치와 그 위치로 다양한 면과 선을 보게 된다.

모든 대상은 선과 면과 색이며 회화미술도 역시 이에 부합돼 있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단순화한다는 게 중요하고, 이것은 집약한다는 뜻이 되며, 따라서 결국에는 기하학적인 형이 요구되는 것이다.” 

1938년 동경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한 이후 유영국은 대부분 작업에 ‘작품’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이는 ‘무제’란 뜻이다. 1943년 귀국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발표한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기하에 근거한 실험적인 것들로 서양 예술가들 몇몇 사람의 영향이 농후하며 주로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추상언어 사용

▲'WORK', 캔버스에 유채, 105×105㎝, 1999.

© 그가 자기의 추상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1950년대 중반부터다. 예컨대 ‘도시’(1955)는 도시의 모습을 조형적으로 표현했는데, 지역의 특성적 형태의 선을 따고 선과 선 사이에 생겨난 면을 채색하면서 그가 말하는 “균형, 하모니, 리듬”이 나타나게 했다. 균형, 하모니, 리듬이란 곧 조형이다.
균형과 하모니는 선과 색에 의한 화면 분할이고 리듬은 유사한 선과 색의 반복으로 역시 조형의 일종이다. ‘도시’는 유영국이 미화시킨 도시 혹은 조형의 도시로 그가 원하는 추상의 도시인 셈이다. 이런 유형의 추상풍경화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모든 추상은 자연과 예술가 주변의 대상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는데, 예술가 내면에 치중한 추상일지라도 잠재의식에 남아 있는 이미지들은 자연과 예술가 주변의 대상에서 기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영국의 작품에는 산, 계곡, 들, 나무, 길, 새, 바다, 물고기, 해, 하늘, 도시, 건물, 거리, 지붕, 집, 언덕 등 유추할 만한 형상들이 있다. 그는 오브제를 단순화? 요약?응축하며, 조형적으로 추상화하는 작업에 정진해왔다. 내가 그를 추상풍경화가라 부르는 이유는 풍경을 추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영국의 조형성은 무엇일까. 1964년 그는 “회화란 모름지기 자기를 내세워야 한다. 나의 이미지의 출처는 자연과 생활주변이다”라고 말했다. ‘자기를 내세워야 한다’는 건 조형성을 강조한 말이다. 조형에는 보편적 규칙이 있다. 예컨대 수직선은 설레임을 주고, 평행선은 안정감을 준다.

▲'WORK', 캔버스에 유채, 150*150cm, 1985.

© 밝고 명랑한 색은 쾌활하고 시적인 느낌을 주며, 어둡고 무거운 색은 침울하고 사변적 느낌을 준다. 이런 규칙을 알면 그의 작품이 풍경화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보편적 규칙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형에도 주관적 느낌과 사고를 표현할 여지는 있다. 특기할 만한 유영국의 조형성은 1970년대 중반 이후에 나타나며 나이가 들어서인지 형상이 부드러워지고 공간이 넉넉해 여유가 있다.
그러나 조형적 추상은 규칙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긴장을 요하는 작업이며 자칫 반복되기 쉬워 시각적 디자인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유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1996년에 말했다. “60세까지는 기초를 좀 해보고 자연으로 더 부드럽게 돌아가 보자는 생각으로 그림을 했었다.

현재 나에게는 노인으로서의 노년의 흥분이 좀더 필요하다. 요즘 내가 그림 앞에서 느끼는 팽팽한 긴장감,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고 새로운 각오와 열의를 배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긴장의 끈을 바싹 나의 내면에 동여매고 작업에 임할 것이다.”  

●유영국의 회화세계



▲'습작', 혼합재료, 37×79.5㎝, 1938.

© 유영국은 한국 모더니즘 제1세대 작가다. 1938년 동경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한 이후, 당시로선 가장 실험적인 추상미술을 시도해 현대 미술사 중 추상미술의 큰 획을 그은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후 꾸준히 추상에 바탕을 둔 자기세계의 심화를 구현해나갔다. 
1937~42년까지 5년 간 출품된 것이 초기작품들인데, 초반에는 유기적인 곡선과 곡면위주에서 1939년 이후에는 확고한 기하학적 추상패턴을 이뤄나가기 시작한다. 해방후 유영국의 활동은 1947년 결성된 신사실파의 참여와 1950년 미술가협회의 가담으로 나타난다. 김환기, 이규상, 장욱진 등이 같이 활동했으며,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제 1세대 작가들이 결집했다는 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57년에는 모던아트협회를 구성해 이념적 활동을 다시 시작했으며, 1964년 첫 개인전을 가졌다. 개인전을 계기로 그는 일체의 그룹활동에서 벗어나 자신의 작품활동 심화에 집중한다. 1958년을 경계로 10여 년간 그의 작품은 예각진 구성에 다소 표현적인 요소들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후에는 분할적인 색면과 관조적인 자연이미지를 융화한 작품들로 이어지며, 이와 같은 기본적인 색채와 톤은 1990년대의 작품에까지 지속되고 있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