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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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명 : 정체된 허무주의 예술
  • 작가명 : 김광우

 

미술비평: '이우환의 만남을 찾아서 전'을 보고
김광우 / 미술평론가

1960년대 말 서양미술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 통로가 막힌 외길로 들어섰다. 공간에 대한 사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형상의 최소화에 역점을 두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70년대 들어서는 형상마저도 불필요해져 개념 문제에 집착하게 됐다. 고대 그리스인의 사고가 규범이 된 이래 서양미술은 ‘예술은 모방’이란 전제 하에 행위됐는데, 개념미술은 이런 전제를 부정하면서 근본적 사고의 변이를 촉구했다. 조셉 코수스의 ‘하나와 세의자’는 개념미술의 상징이 되는 작품이다. 플라톤은 개체들의 존재를 절대적 실재에 대한 모방으로 봤는데, 코수스는 실재란 개체들의 속성에 지나지 않음을 시위한 것이다. 진도개와 삽살개의 개념이 개별적인 게 아니라 여타의 개들과는 구별되는 진도개와 삽살개들의 특징이 두 개에 대한 개념을 성립시키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이 한창 성행할 때 이우환은 삼십대였고 자연히 미술과의 만남이 미니멀리즘에서 시작된다. 개념미술은 일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의 지성적 취향에 맞았고, 미술을 통해 그는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작업을 했다. 그의 초기 작품을 보면 서양미술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공간이 있는데, 동양 관념의 형상화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우환은 서양인들이 나-타자 관계를 사회적 상황에서 설정한 것과 달리, 철학적 환경에서 타자와의 만남을 성찰한다. 이런 만남은 다분히 관념적이라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이뤄지기 어려운데, 나와 타자와의 만남이 동종의 문화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우환은 사회적 상황이 집단적 이성의 한계로 폐허가 된 마당에 순수 나와 타자와의 관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런 시각은 본질적이며, 존재 자체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이며, 근대를 폐허로 보는 시각으로 그는 자연히 문명 비판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1960~70년대 그의 작품은 동·서양에 시사하는 바가 많았고 자아의 실존적 의미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그의 작품이 35년 동안 동일한 형상으로 정체됐다는 사실이다. 근래 그가 피력한 예술관을 보면 제자리걸음을 하다 지쳐 매우 심약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예술바탕에는 허무주의가 깊게 깔려 있다. 무기력한 이성의 자조적 성격이 농후한데, 이는 그가 바라보는 역사와 현 세계에 기인하며 동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한 지성인이 오랜 사변 끝에 결론으로 단정지은 점을 무턱대고 동감할 수 없다는 말로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허무주의적 요소는 이념과 문화의 충돌에서 맹목적 물리적 현상이 인간을 무기력한 상태로 내몰고 결국 더 이상 희망 없는 역사관?세계관을 갖게한다. 허무주의는 곧 패배주의이며, 예술에 있어서 그것은 과거 다다에서 보듯 도피적 성격이 강하다. 

근대를 폐허로 인식, 희망없는 세계관 가져

비판의 객관성을 띠기 위해, 그의 논리에 맞추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비판을 제기한다.
이우환의 2002년 2월 파리에서 쓴 ‘여백의 예술’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의 근래 심경을 읽을 수 있다. “캔버스나 어떤 곳에 붓으로 점 하나 둘 찍는 일이나, 전시장이나 어떤 곳에 철판과 돌 한두 개 갖다놓는 일이 과연 ‘예술’이 파산한 시대의 표현으로서 얼마만한 새로움과 필연성을 갖는가. 또 소위 ‘인간’이 퇴장한 오늘날 조금이나마 무슨 말로 누구에게 글을 쓴다는 것일까.”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그의 명성과는 달리 나는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고, 시대적 필연의 예술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는데,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이우환은 “물론 제도로서의 문화란 카테고리는 존재하고 기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벌써 썩고 금이 가서 사상적으로는 설득력이 없는 것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이란 말로 현재의 문화를 “근대의 폐허” 가운데 하나로 본다. 그는 자신의 예술행위를 근대의 폐허 가운데서 “잡것이 배어든 자기 이질성”으로서의 ‘나’로서 “불순분자의 증표”를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본다. 얼마나 자포자기적인 탄식인가.

예술을 떠나서 그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면 이해되는 점이 많다. 일본에서 오래 지내다보니 일본인은 자신을 “침입자 취급”했고, 국내의 한국인은 “일본 바람을 탄 도망자”로 몰았으며, 더 나은 곳을 찾아 “유럽 각지를 삼십여 년 헤맸더니, 그쪽에서는 또 동양적이니 이방인이니 하며 칭찬으로 점잖게 제외시키려 들지 않는가” 하고 탄식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설 곳을 찾지 못하자 사람을 만나 관계를 상대화하는 데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려고 했고, 그의 예술은 이런 상황 설정에서 시작됐다.

경계인의 고집스러운 자기실현

이우환의 미학은 그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이제 표현은 근대적인 자기실현과 같은, 주변과 절단된 오브제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이미 캔버스가 내가 경영하는 식민지가 아니듯이 사람도 자연도 붓도 물감도 나의 이미지나 재료나 도구나 노예가 아니라 사이좋은 친구인 한편 미지수의 남이다.” 근대의 폐허의 절망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폐허만을 자각하고 주저앉아 ‘고도 씨’를 기다리는 허무주의 미학이다. 예술은 궁극적으로 표현이다. 그는 “표현이란 어차피 설정일진대”라는 말로 “어떤 그림의 울림이” 나오지마는 “현실 공간과 뉴트럴하게 연관”짓는다고 해서 “이런 조각에서 무엇이 보이나” 하고 예술가 개인의 표현이 무용함을 주장한다.

이우환의 미학에 대한 나의 비판은 다음과 같다. 그가 말한 “이쪽과 저쪽이 만나고 매개할 수 있는 중간항”의 설치가 곧 예술이다. 그는 “중간항에 있어 나와 타자와의 상호 한정이 함축과 암시를 자아내어 지각과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표현으로만 가능하다. 그는 나와 타자의 만남을 강조하지만 버스나 전철과 같은 우연한 공간에서 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한 만남 자체가 설정이다. 나와 이우환이 만나고 매개될 수 있는 중간항은 갤러리와 그가 자신의 사고를 표현한 ‘여백의 예술’이다. 그는 자신을 충분히 표현했고 나는 만남을 통해서 그에 관한 나의 생각을 충분히 표현했다. 만약 그가 끝내 오지 않는 ‘고도 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면 그는 나를 만난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누구와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만남을 찾아서’라는 그의 예술적 전제는 삼십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나는 이를 정체된 허무주의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