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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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명 : 김미란 <이몽사몽>
  • 작가명 : 김미란
  • 전시기간 : 2017.5.9 - 5.27
  • 전시장소 : 갤러리 815 & BUNKER
  • 전시문의 : 02-332-5040

 

김미란의 自覺夢

 

- 김광우 (관장/미술평론)

 

팔십 평생을 산다고 하면 우리는 약 26시간 수면을 취하게 된다. 깊은 잠과 선잠을 번갈아 자게 되는데, 한밤중부터 이른 아침까지 약 90분 간격으로 10~30분간 지속되는 렘REM(Rapid Eye Movement 급속안구운동) 수면이 4~6회 일어나며, 그 사이에 꿈을 꾸는 경우가 많다. 수면의 약 20%가 렘수면이고 나머지가 비렘non-REM 수면이다. 급속안구운동이 발생하는 렘 수면기에 뇌파가 빨라지고, 전압이 낮아지며, 심장의 박동수나 호흡과 같은 자율신경성 활동이 불규칙해진다.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지각하는 꿈, 즉 의식이 뚜렷한 꿈을 자각몽(lucid dream)이라 한다. 자각몽은 수면자가 꿈꾸는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에 꿈 내용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으며, 깨어나서도 그 내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도 자각몽이다.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았는데, 꿈에서 깬 뒤 자신이 나비였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해 자아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경험을 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생리학자 스티븐 라버지Stephen LaBerge(1947-)에 의하면 자각몽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꿈을 꾸는 도중에 꿈임을 자각하는 경우(dream recall)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의식적 노력을 통해 자각몽 상태로 돌입하는 경우WILD(Wake-Initiated Lucid Dream)이다. 라버지는 훈련으로 자각몽의 능력을 키울 수 있으며, 의지만 있다면 WILD에 돌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각몽이 창조적 영감과 풍부한 통찰을 촉진하고, 스트레스 완화 및 정서적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김미란이 자각몽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는 이유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와 공간이 3차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언제든 그것이 무너지거나 뒤바뀔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각몽의 직접적인 체험이 계기가 된 것이지만, 현실이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하기 때문에 “현실이란 가위눌림 상태와 흡사하다”는 생각에서 현실 이탈을 통해 꿈의 현실에서 행복을 맛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미란에게 자각몽이 절실한 이유는 현실이라는 가위눌림을 이겨내기 위해서이다. 

 

 김미란은 꿈에서 본 위아래가 대칭구도인 장면과 강렬한 색의 대비를 자신의 그림에 적용한다.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꿈을 꾸어야 한다. 꿈은 그녀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또한 창작을 독려한다. 꿈의 현실, 즉 무의식의 우물에서 창작의 주제를 길어온다. 일찍이 초현실주의의 교황 앙드레 브르통은 1929년에 두 번째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진실에 가리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로 김미란도 “진실에 가리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기 위해 꿈을 탐험한다. 그녀의 회화는 초현실의 진실이다. 

 

 김미란은 이렇게 말한다. “꿈을 그리는 것은 꿈을 기억해내는 것만큼이나 집중이 필요하며 꿈을 새로운 언어로 번역하는 것과 같다. 꿈 드로잉은 그리면서 무의식이 작동한다.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는 어떤 이미지로 전개될지 그림을 그리는 주체도 모른다. 오로지 무의식이 도울 뿐이다.”

 

꿈물질-달콤한 악몽, oil pastel on canvas, 116.8x91.0cm, 2015

 

무차원 시-간, oil on canvas, 90.9x72.7cm, 2016

 

내면의 빛, oil on canvas, 96x41cm, 2017

 

꿈드로잉 13, pen on paper, 14.2x20.7cm, 2011

 

꿈드로잉 18, pen on paper, 14.2x20.7cm, 2011

꿈화첩 5-18, pencil on paper, 2015

 

 

 

 

 

꿈에 대한 단상 1

 

- 김미란

 

아침에 잠이 깨면 눈을 감은 채 꿈의 궤적을 좇는다. 꿈의 전체 모습이 당장 드러나지는 않는다. 꼬리를 잡고 천천히 더듬다 보면 엉덩이가 나오고 다리도 나오고 그러다 전체 몸통이 따라나온다. 마치 땅에서 캔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튼실한 고구마나 감자처럼. 꼬리만 보았을 땐 그것이 쥐의 꼬리인지 사자의 꼬리인지 알 수 없다. 꼬리가 전부일 때도 있고 쥐꼬리를 잡았는데 용의 몸이 나올 때도 있다. 아침에 꿈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출근에 쫓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매 아침마다 이불 속에서  잠의 달콤한 여운을 즐길 수는 없다. 잘 수확한 꿈의 내용이 생생하여 급한 일 먼저 처리한 후 기록해도 될 것 같은 날들이 있다. 오후가 되어도 그 생생함이 유지되는 날도 더러 있지만 많은 경우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린다. 기억나는 것보다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 더 신기한 일이다. 

 

 어째서일까. 우리의 정신활동 중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고작 5%에 불과하다고 한다, 뇌의 나머지 95%가 무슨 일을 하는지 우린 알지 못한다. 각성 상태가 5%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깨어 있어도 뇌가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하물며 잠들어 있는 동안의 일임에야 요원한 일이다. 그저 꿈을 통해 겨우 엿볼 따름이다. 궁금하지 않는가? 꿈을 통해 겨우라도 엿볼 수 있는 우리의 95%에 해당되는 미지의 뇌 활동이 말이다. 우주는 95%가 암흑물질이라는 이론하고도 유사하다. 인류가 우주를 탐험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온갖 상상을 동원하여 세운 가설과 그것을 과학기술로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어쩌면 우주가 꾸는 꿈의 방식 아닐까? 인류는 우주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의 물질인 것은 아닐까? 그 무의식의 중심에 예술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상상해본 적 있는가? 인류는 우주의 두뇌세포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이나 도파민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다소 황당한, 그러나 그럴지도 모를. 신경세포가 1000억여 개이고 이 은하계를 돌고 있는 태양계도 1000억여 개라는 추정이 우연일까. 

 

선명했던 꿈이 흔적 한 올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은 꿈이라는 정신활동이 각성 상태의 내가 갖고 있는 의지와 다른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난 생각하곤 한다. 하버드대학의 뇌신경 과학자 앨런 홉슨의 과학적 주장은 그래서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뇌는 자율적으로 잠 잘 때, 꿈 꿀 때 신경전달물질을 스스로 줄이거나 닫고 연다는 것이다. 인간이 고작해야 뇌가 하는 일의 5%밖에 모른다고 하니 꿈이 스스로 의지를 갖는다는 상상도 과장은 아닐 테다.  잠을 자야만 꿈을 꿀 수 있고 꿈을 꿔야만 무의식의 어떤 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쩌면 인간이, 모든 생물체가 꿈을 꾸고 잠을 자는 이유는 무의식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의식은 우주처럼 열려 있어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셈이지.

 

 꿈이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이든 아니든 꿈이 나의 기억으로부터 달아나버리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아침이면 흔하게 일어나는 이 작은 사건이 어쩌면 뇌의 시스템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은 아닐는지. 꿈이 족적을 감추고 보따리 싸 들고 사라지는 것이 신기한 것처럼. 이 글을 시작할 때 쓰려던 내용과 전혀 상관없이 삼천포로 빠진 이 내용도 신기하다. 이 글은 원래 쓰고자 한 방향이 아니다. 그런데 손이 나를 이렇게 이끌고 타이핑 된 문자가 나의 생각을 이끌어 이런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2016년 10월, 불면의 밤, 일어나 꿈꾸듯 쓰다.